영화 올랜도와 뮤지컬 올랜도 인 버지니아
아직 소설 올랜도를 읽지 않았다. 언젠가 소설 올랜도를 읽고 세 개별 작품을 비교할 수 있게 되기를.
영화 올랜도는 샐리 포터 감독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랜도를 각색해 영화화한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가문과 젠더무법자적인 삶을 모티브로 남성과 여성을 오가는 귀족의 삶이라는 인물을 창안했다. 버지니아가 연인에게 바치는 '가장 길고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를 모티브로 이 소설을 매개한 두 여성 작가의 사랑과 고뇌를 담은 것이 뮤지컬 올랜도 인 버지니아 이다.
나는 영화 올랜도를 아주 오래전에 어둠의 경로로 일부만 감상했고, 영화의 이미지와 젊은 틸다 스윈튼의 안드로진 이미지만을 기억한 채로 뮤지컬을 관람했다. 내가 뮤지컬을 이해하는데에 가장 많이 참고한 이미지는 디아워스의 버지니아 울프였다. 뮤지컬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경험하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통해 작가인 버지니아와 그의 뮤즈 비타 색빌웨스트라는 여성이 겪는 차별과 고통을 언어화하고 공유하고 그를 발판으로 차별받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이상을 꿈꾸자는 과거이면서 현재인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뮤지컬에서 올랜도는 비타 색빌웨스트의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남성적인 면-만용, 어리석음,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거울 세계이자, 버지니아와 비타의 사랑, 비타의 갈망, 버지니아의 사상을 드러내는 무대이다. 극중에서 버지니아는 비타에게 올랜도를 만들것을 허락을 구하고 함께 만들자 제안하는데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이 두 사람이 핑퐁하듯 연극을 하듯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한편으론 올랜도가 뮤지컬의 극중극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보니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도 이 뮤지컬의 극중극처럼 보인다.
# 시작과 끝
영화는 death-love-poetry-politic-sex-birth 순서의 장으로 이어진다. 16세기 올랜도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20세기 올랜도의 저택 밖의 삶으로 끝난다.
뮤지컬에서는 orlandoinvirgia-vita-love-manly-death-identity-epilogue 로 이어진다. 16세기 올랜도의 등장에서부터 아버지의 죽음-상속권 상실-을 지나 20세기 초 셜머딘과의 이별로 끝난다.
두 작품의 시작과 끝이 다르지만 영화 올랜도와 뮤지컬 속 올랜도는 유사하게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뮤지컬은 버지니아의 이야기라서 버지니아의 현재로 끝나고, 새로운 에필로그가 붙는다. 영화 올랜도는 90년대 감독의 시대까지 올랜도의 삶을 연장시킨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영화 올랜도의 결말이 현대적이고 피부로 와닿는다. 뮤지컬은 다소 낭만적인 엔딩이지만 올랜도 그 자체보다는 비타와 버지니아의 사랑이 큰 울림을 준다.
# 올랜도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
뮤지컬은 비타와 버지니아의 문학성,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중성으로 재미를 주는데, 올랜도를 통한 비타의 아름다운 외양의 묘사와 올랜도 내면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며 올랜도라는 인물 자체로 비타를 보여준다. 올랜도와 사샤의 사랑은 비타와 버지니아로 재현되면서 사샤의 모티브가 바이올렛 듀레퓌시스인지 버지니아인지 모호해진다. 영화는 올랜도의 아름다움은 그냥 배우 틸다 스윈튼과 그의 의상에 모두 맡기고 올랜도의 귀족으로서의 삶을 조롱하고, 젊고 미숙한 소년으로서 사회의 남성성을 억지로 어설프게 수행하는 모습으로 남성성을 조롱하다가 그가 여성으로 깨어났을때에는 그의 시선으로 주변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인물의 시선이 카메라의 시선과 겹쳐진다.
영화도 소설과 상당부분 다르다고 알고 있어서 같은 대사를 두 작품에서 얼마나 다르게 이용하는지 비교하는것도 재미있다.
# 같은 대사, 다른 맥락
대표적으로 뮤지컬의 엔딩인 '행운을 빌어, 올랜도' 라는 대사는 극 중 버지니아가 미래의 관객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세지이면서 레이디 올랜도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영화에서는 남서풍을 따라 떠나는 방랑자 셜머딘에게 올랜도가 던지는 작별 인사다. '행운을 빌어!'.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선택한 올랜도가 가볍게 던지는 인사다.
# 미래라는 키워드
영화에서 짜릿한 쾌감을 주는 장면은 이 이전 셜머딘을 만난 직후의 장면이다. 공작처럼 청록색 치마를 펼럭이며 달리던 올랜도가 풀숲에 넘어져 '자연이여 나는 너의 신부요'라고 속삭일때 한 남자가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올랜도의 코 앞으로 처박힌다. 올랜도는 그의 이름도 모르고 그가 마음에 들어서 발이 삔 그를 뒤에 태우고 말고삐를 잡는다. 청록색 트위드와 치마를 입은 틸다 스윈튼이 20세기 초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으로 붉은 머리칼을 단정히 올리고 검은 말을 타고 안개 속을 달리는 모습이 짜릿하다. 그 순간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울리고 20세기로 넘어온지 5분밖에 안된 레이디 올랜도가 깜짝 놀라 말 고삐를 당긴다. 틸다 스윈튼의 마장술에 놀라는데 그 검은머리 남자가 소리친다. 미래에요! 이런 젠장. 뮤지컬의 버지니아와 비타가 그렇게 갈망하던 미래가 지금 레이디 올랜도 앞을 달리고 있다! 미래는 어느덧 올랜도의 코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곧 레이디 올랜도에게 전달된 100년넘게 진행된 재산권 소송의 결과 패소했다는 등기가 전달된다. 어쩌면 제대로된 상속권을 가질 수 있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올랜도는 판결문의 결론을 읽자 마자 경쾌하게 서명 하고 서류를 하인들에게 넘겨버린다. 올랜도는 놀의 상실을 공식적으로 경쾌하게 받아들인다. 엘리자베스 1세가 하사한 작위와 재산은 더 이상 레이디 올랜도의 일부가 아니어도 된다고 선택한 것이다. 올랜도는 대신 셜머딘에게 여기 남아 아이를 낳고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셜머딘은 외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셜머딘이 제안하는 '아이에게 헌신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자처럼 사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올랜도는 거절한다. 그런 올랜도에게 셜머딘은 자신은 미래를 찾아 떠나야한다고 하지만, 올랜도는 '당신의 그 미래는 언제 시작되죠? 오늘? 아니면 언제나처럼 내일?' 이라고 맞받아친다.
현재의 갈망을 나중으로 유예하려한다는 비난이라는 면에서는 뮤지컬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맹목적인 낙관을 매몰차게 거부하는 대사였다면, 영화에서는 미래라는 이름으로 셜머딘이라는 남자가 주입하려는 여성관을 비꼬는 듯한 대사였다. 동시에 지금 실행하지 않으면 미래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주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지 '시작'한다는 수사 때문인가? 다른곳에서 미래를 찿으려고 떠나겠다는 남자를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에드워디안의 영국 남자들은 미지의 모험을 일종의 남성성으로 여겼다고 하는데 그 시대를 대변하는 셜머딘의 남성성을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대사의 발화자가 뮤지컬에서는 셜머딘을 가장한 비타 본인이기 때문에, 비타 색빌웨스트가 미래를 찾아 떠나는건 영화속 셜머딘 보다는 저택이 없는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찾는 행위처럼 해석된다. 영화 속 20세기 올랜도에 가깝다. 셜머딘의 대사를 인용하는데 동시에 레이디 올랜도인 것이다.
그 외 기억에 남는 것들
쇼스토퍼로 썼다던 최고의 남자가 manly라는 제목으로 남성성을 희화해서 오히려 영화 속에서 남자의 의리, 여성 혐오로 하나되는 남자, 적의, 살인, 훈장으로 치장된 남성성 조롱과 비슷하다.
영화 속 사샤는 올랜도를 멤돌며 유혹하고 올랜도의 미숙한 사랑을 비웃으며 가지고 노는 대놓고 나쁜여자인데, 뮤지컬의 사샤는 버지니아와 그의 질투의 대상인 바이올렛과 구분이 모호하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 여왕은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여 남자 대신 왕이 된 여자를 여자 배우 대신 남자가 연기하는 360도 미러링을 보여주고 여왕의 소유물이었다가 남자의 소유물이 되는 순간, 자신이 사샤에게 했던 말이 자신에게 돌아옴으로서 남성의 소유물이 되는 구역질남을 강조해준다.
올랜도의 아버지가 올랜도의 경솔함을 수습하려 여왕에게 말한다.
> 폐하를 기쁘게 해드리려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 우습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잉글랜드는 나의 것이다.
당신은 나의 것이오
왜죠?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영화가 재개봉했으니 한 번은 극장에서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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